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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Knitting/뜨개생활

손뜨개의 역사.2 : 성모마리아, 스타킹, 길드, 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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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뜨개의 역사.1에서 뜨개가 이집트에서 약1000년 경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집트로부터, 뜨개는 스페인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초기 유럽 뜨개는 부자, 왕실 혹은 카톨릭 교회처럼 아주 종교적인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었습니다. 유럽뜨개의 첫번째 조각은 스페인의 왕자 페르난도 드 라 세르도의 무덤에서 발견된 1275년 쯤으로 추측되는 실크 베개 커버입니다.

 

스페인에서는 초기 뜨개가 대부분 가톨릭 교회 전례 의류 및 액세서리로 구성되었고, 그것들은 금사나 은사로 수놓아져 있기도 하였습니다. 아래의 장갑은 16세기에 주교가 착용했다던 뜨개 장갑입니다.

빨간색과 노란색 실크로 만들어진 뜨개 초기의 스페인 장갑, 16세기 주교가 착용했다. 게이지는 23코 20단이다. Victoria & Albert Museum..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뜨개는 성도, 베개, 스타킹, 지갑, 파우치같은 작고 앙증맞은 것들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실용적인 의복이라기보다는 장식 악세서리 용도 였습니다.

 

 

 

 

뜨개하는 성모 마리아

 

14세기 중반의 이탈리아와 독일 그림에서  아기 예수 옆에서 성모 마리아가 뜨개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었습니다.

 

 

이 "knitting Madonnas"는 14세기까지 뜨개가 이탈리아와 독일에 퍼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아래의 사진에서 성모 마리아는 2개의 바늘을 사용해서 원통형으로, 색을 섞어서 뜨개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그 지역에 이런 테크닉이 이미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Joan Thrisk는 'The Cambridge History of Western Textiles'에서 뜨개가 상위계층 여성들에게 유행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Donna Kooler는 'Encyclopedia of Knitting'에서 뜨개가 여성들에게 좀더 친숙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사들이 뜨개 스타킹을 신게 되다.

 

이 조각은 스타킹을 뜨는 단계(양모로 실짓기를 하고, 그것을 깨끗이 하고, 뜨개로 뜨는 것까지)를 보여준다.

약1698년 Chiristoph Weigel 작품. (h/t Kipar.org)

 

 

16세기 말에 뜨개 스타킹 유행해서 이탈리아와 스페인 남자들에게 뜨개 스티킹이 반드시 착용해야 할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남자 옷장에는 스타킹이 꼭 있어야만 했고, 우아한 스타킹을 가진 남자가 더 패셔너블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400년도에 시작된 뜨개 길드가 이런 뜨개 스타킹의 유행 때문에 퍼져 나갔습니다. 무역비밀을 보호하고, 일의 수준을 상승시키고, 사업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적이고, 엄격하며 숙달된 기술자들의 노동조합과 같은 형태로 남자들만의 길드가 설립되었습니다.

 

 

뜨개 길드가 뜨개를 예술의 경지로 올리다

 

만일 당신이 뜨개 마스터가 되려는 중세시대의 젊은 남자라면, 당신은 훈련에 6년을 바쳐야 합니다. 3년은 마스터로부터 매우는 견습생으로, 또 3년을 외국의 기술과 패턴을 배우기 위한 세계여행으로 보냈어야 합니다. 여행 후에 뜨개 견습생은 그의 기술을 엄격한 시험을 통해 증명해야 했습니다. 뜨개 길드에 들어가기 위해 13주 안에 뜨개 모음을 완성해야 하고, 길드 멤버들이 평가해서 가입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Hand-Knitters' Guild of Strasbourg'의 멤버가 되기 위해, 니터들은 위의 사진과 같은 벽걸이 작품을 떠야만 했다.

Jacob의 꿈을 묘사하기 위해 가운데에 아래 부분에 아담과 이브를 표현했다. 1781년 프랑스. Victoria & Albert Museum.

 

 

요구되는 뜨개 작품에는 펠트 모자, 스타킹, 자수 장갑, 셔츠 또는 양복조끼 그리고 뜨개 카펫이 있었습니다. 마치 대학원의 논문처럼 이 카펫이나 벽걸이는 지원자의 기술, 예술성, 취향까지 다 표현해서 6년간의 배움을 쏟아부었습니다. 강도높은 심사과정은 뜨개를 예술로 끌어올렸고, 16세기 초반의 파리의 길드들은 최상으로 여겨졌습니다. 현대의 우리가 좋아하는 디자이너와 패션 하우스를 가진 것처럼, 귀족들은 좋아하는 마스터 니터를 가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뜨개 길드의 시대에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뜨개 아이템들이 생산되었습니다.

 

 

카톨릭 교회의 전례에서 사용되었을 빨간 실크 뜨개 자수 장갑, 17세기 전반. Glove Collection Catalogue

 

 

이 실크뜨개의 남자 금 장갑은 주교 MJ의 것. 대략 1650~80년의 장갑. Glove Collection Catalogue

 

 

 

실크와 메탈사로 만들어진 자켓. 이탈리아. 16세기. Metropolitan Museum of Art.

 

 

 

 

니팅머신을 발명하다

 

1400년도부터 뜨개는 무역으로 성장했고 탐험의 시대동안 유럽 탐험가들과 함께 새로운 땅으로 퍼져나갔습니다.

1589년, 영국인 윌리암 리가 니팅 머신을 발명했고, 산업혁명이라는 더 많은 기술 변화를 겪었습니다. 산업혁명 동안 뜨개 기계는 좀더 정교해지고 니트의 생산이 사람 손에서 기계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몇 세대를 거치면서 뜨개는 손뜨개는  취미생활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1920년대 후반, 뜨개는 패션 분야의 한 예술 형태로 다시 부활했고(Elsa Schiaparelli가 큰 역할을 함),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Elsa Schiaparelli의 나비매듭 스웨터는 그녀의 커리어를 끌어올리고, 20년대 후반의 니트웨어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다.

 

 

 

Now

 

지금 우리는 '정보의 시대'인 21세기에 있다. 뜨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뜨개를 할까요?

 

뜨개가 아름답고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뜨개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게 해서 우리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고, 그 만족은 우리를 창의적이게 만듭니다. 돈을 주고 산 스웨터는 당신의 손으로 뜬 옷처럼 즐거움과 자부심을 주지 않습니다.

처음 뜨개가 발명되었을 때 그렇게 빨리 인기를 얻게 만든 바로 그 단순함, 그것이 오늘날에도 뜨개를 인기있게 만듭니다. 두개의 바늘과 실만 있으면 당신은 아름다운 옷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끔 새로운 테크닉이 더해지긴 해도, 뜨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200년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뜨개를 계속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창작하고 혁신할 뜨개실과 아름다움에 대한 즐거움이 우리의 일부로 유지되고, 바늘과 실만 있으면 니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한 뜨개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참고 자료

http://www.knitty.com/ISSUEspring06/index.html (knitty 2006년 봄)

http://sheepandstitch.com/

 

 

 

2016/02/11 - [손뜨개_ 대바늘/뜨개이야기] - 손뜨개의 역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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